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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가 보낸 편지(1) - 페미가 운동권에게

[여성주의]

페미가 보낸 편지 part1 
페미가 운동권에게




Dear 운동권(?)들


  안녕, 운동권(?) 이렇게 불리는 사람 중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있는지 알기 때문에 너희를 이렇게 부르긴 싫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부르니까 일단 나도 이렇게 부를게. 반가워, 난‘학관과 사범대에 가끔 출몰하는 페미’야. 매번 너희가 선거에 나올 때마다 잘 보고 있어. 지금도 선거 중이라 바쁘겠고나. 내가 너희에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도 선거에 관한 이야기야. 제발 고까워 말고 들어줬으면 해 :)

   너희가 열심히 사는 것도 알고 그리고 그나마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선본들 중에서는 너희가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다는 것도 알아. 특히 요즘 페미니즘 단위들이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는 못하는 동안 너희가 열심히 했던 것, 그리고 전에는 너희가 먼저 페미니즘 단위들이 모였을 때 자발적으로 연락해서 같이 활동을 하자고 했던 것에 대해서는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더불어 가지고 있어. 그치만 그 뒤로 페미니즘 단위들과 너희 운동권(?) 사이에 교류가 너무 없었고나. 우선은 아직 페미니즘 단위들이 다 망한(-_ㅠ) 건 아니고 나름 열심히 활동 중/활동을 준비 중이란 얘기를 먼저 전해야겠어.

   너희가 선거 중에 여성주의 공약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걸 정확히 3년째 보고 있어. 참 어찌도 그리 매년 똑같은지. 그리고 그 기간 동안 페미니즘 단위들[각주:1]은 너희의 공약에 관해서 이야기해왔지. 참 매년 똑같은 말을. 이제는 우리 서로 충분히 지겨워 질 때가 된 것 같아. 아니,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난 지겨워. 물론 너희나 여성주의 단위들이나 앵무새도 아니고 매년 똑같은 말을 해대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학교는 변화가 없는데 어떻게 공약이 쉽게 바뀌겠니. 

   그치만 한편으론 좀 다른 생각도 들어서 오늘은 다른 얘기를 좀 세게 해볼게. 내가 그래도 평소엔 아니지만 선거 땐 너흴 비판많이 지지조금(-_-)했던 이유인 그 공약이, 나의 (혹은 우리의) 페미니즘 운동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부분이 있었어. 물론 너희도 여성주의적인 활동을 정말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건 너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됐던 것 같아. 너희에게도 나에게도 가벼운 얘기가 아니니까 차근차근 얘기해보자꾸나.

  사실 너희가 여성주의 활동에 관심이 많다고는 하지만 선거까지 통틀어서는 정말 구체적인 공약이 나온 건 몇 번 없었지. 대표적으로 생리공결제[각주:2]랑 여학생전용 체육수업[각주:3]이 있겠고나. 그리고 그 외엔 너희가 항상 정책 한 구석에 끼워 넣었던 자잘한 것들이 있지. 예전에는 뭐 미술치료[각주:4]도 있었고, 엄마와 노는 걸 지원[각주:5]해준 적도 있었고, 학내 여성노동자 실태조사[각주:6] 얘기도 했고, 강의실 성폭력 얘기도 꾸준히 했고, 그리고 꾸준히 좋은 말‘은’ 많이 했어 :)

   그런데 난 너희가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혼자 다 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선거는 구체적인 정책이 중요하고 공약이 중요하니까 그랬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너희가 여성주의는 일상에서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선거 때마다 많이‘는’ 하는데 오히려 공약에 그게 좀 묻히는 것 같아 아쉬워. 그리고 예를 들어서 생리공결제 같은 건 너무 앞뒤 맥락이 사라진 채 선거 때 갑자기 ‘삐용-’ 하고 던져진 감이 들어서 좀 답답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정책이 아니거든. 대략 남자가 훨씬 많고 깜이 없는 사람이 훨씬 많은 교수나 강사들에게 수업에 대한 지배력이 엄청 큰 지금 실제로 여학생들이 그걸 부담 없이 잘 쓸 수 있을만한 조건이 만들어 진 것 같지도 혹은 질 것 같지도 않고, 여학생은 이래서 안 돼 같은 평가들 듣기도 짜증나고, 수업권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생리 주기가 4주일 때도 있고 3주일 때도 있고 8주일 때도 있어서 일정하지 않은 건 또 어떡해야 하며, 생리 말고 다른 걸로 아플 때도 있는데 생리가 불결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면 몸이 안 좋을 때 ‘결석할 수 있는 권리’가 차라리 낫다는 생각도 들고... 생리공결제라는 것 안에는 이런 수 없이 많은 맥락들이 있는데 그렇게 쉽게 시행할 수 있을까, 쉽게 시행해도 될까 하는 고민이 들었었지. 한창 생리공결제를 다들 도입한다고 했던 때(50대 총학생회 선거) 너희한테도 이런 얘기를 한 단위[각주:7]가 있었지. 섬세하게 접근해서 길게 논의를 같이 하자는 말들을. 그게 잘 전달이 안됐나 걱정했는데, 그래서 안 만든거니? (ㅋㅋ)

   어쨌든, 생리공결제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 공약들을 내고 실제로 실행하는 부분들을 혼자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말 일상에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뭔가 결정해서 주는 게 아니라 같이 만들어 가야하는 것 아니겠니? 너희가 만들어서 그걸 시행하기만 한다면 실천가능의 철학[각주:8]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실천가능에게는 다른 페미 언니가 편지를 하나 썼으니 읽어주길 바래.)

   솔직히 나도 너희랑 같이 할 수 있는 건 같이 하고 싶어. 난 독자적인 일만 벌리기엔 너무 재정이 궁핍(-_-)하거든... (재정이 안 궁핍하면 뭐든 같이 안 할거다란 말은 꼭 아니긴 해. 뭐, 맞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좀 섭섭하기도 해. 이번에 ‘진짜 페미니즘’[각주:9]이나 ‘강의실 성폭력 뿌리뽑기’[각주:10]에서는 자치단위들에게 제안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솔직히 난 일언반구도 들어본 적 없거든? 대체 누구한테 얘기한 걸까? 다른 담론들에 있어서는 다른 단위들에게 조언을 구하던데 여성주의는 독자적으로 수행할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 건가 봐?

  이건 할까 말까 고민했던 말이긴 한데, 너희에게 여성주의/페미니즘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 너희의 ‘정치적 올바른’ 일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원리? ‘진정한 해방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하는 모순에 대항하는 방법? 학내 페미니즘 단위들의 운동이 전체 운동을, 계급을, 자본주의를 통틀어 사고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지. 그런데 글쎄, 니네가 하는 방식이야 말로 페미니즘을 선거 때의 공약들, 일상에서 말해내야 한다는 말보다 학생들의 시선이 더 집중될 수밖에 없는 무슨 복지정책 같은 공약들, 선본을 개념 있어 보이기 하는 멋찌구리한 말들로 포장된 어떤 것들, 부차적인 어떤 것들로 만들고 있진 않니? ‘여성주의적’인 시공간을 만들고 싶다면, ‘여성주의’나 페미니즘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어떤 공약들이 아니라 정말로 노골적으로 부딪힐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대놓고 여성주의를 외치는, 여성주의적 논쟁을 만들어 나가는 선본이 아니고서는 여성주의 선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생각해. 그저 여성주의를 옵션으로, 머스트-해브 아이템must-have item 정도로 사유하는 좌파/운동권 선본이겠지. 이러니까 내가 너흴 그냥 무턱대고 믿기는 힘든 거 아니겠니?(-_-)

   그리고 지금 학내의 상황이 반성폭력 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에, 혹은 총학생회가 지지해야 할 (아니면 운동권들이 지지하고 싶은) 자치단위가 과/반, 단대중심이기 때문에 너희의 여성주의 공약들이 반성폭력 공약과 아까 말한 멋찌구리한 공약들로 이뤄져 있는 것도 좀 아쉬워. 멋찌구리한 공약이야 앞에서 많이 말했지만, 반성폭력적인 내용들, 자치단위를 여성주의적으로 구성하겠다는 이야기들, 너희 (조직의) 입장에서 그것이 중요한 공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매년 비슷한 공약들 같은 이야기들만 하는 건 좀 안타까워. 여성주의가 윤리·도덕 정도의 내용만 포함하고 있는 것 같은 이미지를 심어주잖아. 독자적인 운동이 아니라. 물론 너희는 스스로 의도한 게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그리고 너희는 잘 하고 있다고 얘기하겠지만.

   난 페미니즘의 독자적인 운동 영역까지 너희보고 해달라는 건 아니야. 그 부분은 학내의 페미니즘 단위들이 해야 할 부분이고 최근 열심히 못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하지만 어쨌든 페미니즘 단위들이 할 수 있을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해야지 맘먹고 준비 중이야. 다만 아쉽다고 한 점은 그런 부분의 지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이 없다는 거야.

  갑자기 어려운 말 좀 쓰자면 총학생회는 학생들에 게 뭔가를 그저 주는 게 아니라 학생사회 자체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 활동하는 단위들이든 동아리든 매체든 과/반이든 학회든 뭐든 간에, 그런 자치단위들이 활동하기 좋은 구조를 마련하는 것, 그런 자치단위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지탱하는 것. 물론 ‘고도의 추상성’(ㅋㅋ)이 동반된 이 말에는 넌 쉽게 동의하겠지만 너의 방식 안에서 나는 나의 운동이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희 중 하나가 자주 하는 공약중 하나인 “자치단위발전 특별위원회”[각주:11]가 왜 너 혼자 하는 판이 되는지 아니? 난 그게 상정하는 자치단위는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해. 너희가 중시하는 과/반, 단대 + α겠지. 

  조금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하진 않을래. 어쨌든, 그게 페미니즘 단위들의 운동을 지지하지 못하고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야. 그 속에서 내 운동이 그 안에서 얼마나 지지받고 존중받고 있는지 못 느끼겠어. 정말 자치단위들을 지원하고 지지할 수 있는 “자치단위발전 특별위원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페미니즘 단위, 장애인권 단위, 생태주의 단위들을 포함한 여러 자치단위들의 운동이 너희 운동 안의 한 영역으로 사고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평등한 단위로써 처음부터 같이 만나서 함께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판을 다 만들어 놓고 초청하는 게 아니라 말이지.

   내가 한 비판들은 다 나의 편협함에서만 비롯된 걸까? 근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 것 같더라. 너희들(좌파들)끼리도 같이 안 하잖니.

  어쨌든 자꾸 쓰다보니까 이야기가 길어졌고나(길면 같이 하는 다른 사람들한테 혼날 텐데 말이지ㅠ).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너흴 미워하고 있는 건 아니야. 나도 너희와 같이 하고 싶은 맘이 좀 있고, 그래도 사람들 시선이 기중 많이 모이는 편인 총학 선거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애틋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래서 그
런 마음과 내 아쉬움을 담아 편지를 쓴 거란다. 나의 이런 마음을 고깝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럼 남은 기간도 힘내렴 :)



from 학관과 사범대에 가끔 출몰하는, 운동권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어떤 페미가[각주:12]



  1. 선거마다 정책간담회나 선거신문을 통해서 입을 연 여성주의 단위들은 달랐다. [본문으로]
  2. 49대 총학생회 11월 선거에서 PLAY가 들고 나왔고, 3월 선거에서 서프라이즈 선본이 할 생각이 있다고 했던 공약. 50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11월이나 4월이나 정말 난무했다. 스포트라이트, ing, my pride SNU까지 세 선본이나 지지했다. [본문으로]
  3. 49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PLAY가, 50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스포트라이트, ing가 들고 나왔다. 50대 총학생회에서 만들었다. PLAY와 스포트라이트는 같은 조직이다. [본문으로]
  4. 50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스포트라이트 선본의 공약. [본문으로]
  5. 위와 동일. 이번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리얼리스트가 가지고 나왔다. 스포트라이트와 리얼리스트가 같은 조직이란 건 굳이 안 밝혀도 알만한 사실이다. 51대 총학생회 선거의 스윙바이 선본의 공약이었는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본문으로]
  6. 50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스포트라이트. ing 선본의 공약. 51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스윙바이의 공약이었고, 이번 선거에서 리얼리스트와 세잎클로버의 공약이기도 하다. ing와 세잎클로버는 같은 조직이다. [본문으로]
  7. 쥬이쌍스. 50대 총학생회 선거 정책간담회 속기록을 참고하기 바람. [본문으로]
  8. “선거 때 내놓은 공약은 반드시 지킨다. 지켜야 하는지 아닌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선거를 통해서 대표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내 맘대로 정리한 실천가능의 철학임. 아니라고 생각하면 자보 쓰든가.) 그래서 최소한의 절차도 지키지 않고 총운위원들조차도 모르게 진행시키고 나중에 빵- 하고 터뜨린 게 많더라. ...아놔 근데 이명박이 이제 와서 다시 대운하 파면 어쩌지. [본문으로]
  9. 리얼리스트의 리플렛에서 따왔다. [본문으로]
  10. 리얼리스트와 사회대 세잎클로버 선본에서 나온 공약. 참고로 사회대 세잎클로버 선본에서는 생리공결제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근데 요 면을 빌려서 잠시 얘기하자면- “너흰 날짜 정해놓고 생리하니?” 대체 예약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_-) [본문으로]
  11. 리얼리스트의 자치활동 지원을 위한 공약. 50대 총학생회 선거 스포트라이트 선본, 51대 총학생회 선거 스윙바이선본에서도 있던 공약들과 유사하다. [본문으로]
  12. 지난 일 년간 사대여모에서 활동하고 지금은 사대여모의 부흥과 관악여모의 재기를 꿈꾸고 있는 한 페미. [본문으로]